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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쿠코스

코지마신사(小島神社)

2015-04-22

바다에 두둥실 떠올라있는 떡모양의 섬에 하얀색 도리이. 이키의 몬산미셰루(壱岐のモンサンミシェル)라고 불려지는 이곳은 최근 일본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화제의 파워 스팟 코지마신사(小島神社)입니다. 게다가 연애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하네요~^^ 당장이라도 달려가보고 싶으신분들 많으시죠?^^ 하지만 어떻게 가야할지. 섬인데 다리도 없고.ㅠㅠ 이곳 코지마신사는 조수가큰 간조시에만 바다속에서 참배길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언제든지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곳이랍니다^^ 썰물 시간에 코지마신사를 바라보면 서서히 바다속에서 참배길이 나타납니다. 고요함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이키는 신들이 머무는 섬이라고 불리며, 1000개 이상의 신사가 있다고 합니다. 약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키카구라(壱岐神楽)도 유명하죠. 풍부한 자연속 이키 사람들의 생활문화는 지금도 신들과 공존하는 듯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키로 여행하실 때 살며시 들려보시는 건 어떠세요. 물이 차오르면 돌아올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코지마 신사로 가는 편 조위가 약 90cm 이하가 되면 바다에 길이 나타납니다. ​이키시 아시베항(芦辺港)의 조석표에서 썰물 시간대를 체크! http://tide736.net/month/?y=2015m=4pc=42hc=5sw=calendar ​※ 섬전체가 신역(神域)으로 되어 있습니다. 잔가지, 자갈 등을 가져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주의하셔야합니다.

카메야마사내기념관[특별전시회]

2013-11-13

나가사키시,풍두공원의 사카모토료마의동상 나가사키 료마 군이 전국의 이벤트에 나가면 왜 나가사키인데 료마야?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1864 년 카츠가 이슈 에 동행해 처음 나가사키에 왔었던 사카모토 료마는 이후 1865 년 나가사키에서 일본 최초의 무역 상사 카메 야마 사내 를 창설했습니다. 카메 야마 사내 는 해운업을 중심으로 한 상업 활동을 실시한 것 외 , 정치 활동 에도 참여 삿초 동맹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후에 해원대 ' 로 개칭 되었습니다 . 료마가 방문했을 때는 이미 개항한 나가사키 이 땅에서 외국 범선 이나 증기선 외국인 거류지 , 나가사키에서 성숙한 서양 문명을 만난 것이 이후 료마 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 나가사키 료마의 희망의 땅이라고도 합니다 ! 그리고 카메야마사내흔적이 있는건물을 당시의 모습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한 것이 나가사키 카메야마사내 기념관 ' 관내에는 사카모토 료마 가 입고 있던 紋服 ( 복제:가문의 예복 ) 또는 용마가 신고 했다는 부츠 의 재현 품 을 비롯해 편지 나 사진 등 카메 야마 사내 와 막부 말기 의 나가사키 에 관련 자료가 전시 되어 있습니다 11 월 1 일 ( 금) ~ 2014 년 2 월 14 일 ( 금)까지 나가사키 와 사카모토 료마 를 잇는 에피소드 로 인기가 높은 이로 둥근 사건 '을 테마로 한 기획전을 개최 중! 서한 ( 미요시 마코토 창고 앞 ) ( 복제 ) (공산사 소유 시모노세키시타치나가 부 박물관 관리 ) 를 시작 , 이로하마루에즈(いろは丸絵図)도 패널전시 등 자료를 보실 수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입구 에서 들여다 보는 수 밖에 없는 중간2층에서도 기획전 기간동안에는 특별히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사카모토 료마 와해원대 사가 몸을숨겼을 지도 모르는 공간 팬에게는 참을 수 없겠 네요 ~ ( ≧ ∇ ≦ ) 그리고 11 월 15 일은 료마의 기일이기도 한데요. 11 월 15 일 ( 금) ~ 11 월 24 일 ( 일)까지의 기간 혈흔이 있는 족자 복제 를 특별전시합니다! 료마는 1867 년 11 월 15 일 교토 오우 미야에 나카오카 신타로 와 함께있는 곳을 습격당해 암살되고 그 때 방에 있던 족자 하단에 혈흔이 묻어 있습니다. 나가사키에서는 좀처럼볼수 없는 물건입니다 ! 이 기회에 꼭 나가사키 카메야마사내 기념관에 들려보세요 【 나가사키 카메 야마 사내 기념관 ] 주소 : 長崎市伊良林2丁目7番24号 전화 번호 :095 - 823 - 3400 개관 시간 : 9:00 ~ 17:00 휴관일 : 연중 무휴 입장료 : 일반 / 300 엔, 고교생 / 200 엔 초 중학생 / 150 엔 기획전 : 11 월 1 일 ( 금) ~ 2014 년 2 월 14 일 (금 ) 특별전시 : 11 월 15 일 ( 금) ~ 11 월 24 일 ( 일)

드로 신부 오히라작업터(ド・ロ神父 大平作業場跡)

2013-06-27

산속에 나타난 벽돌 건물 세월이 흘러 잔디와 나무 뿌리가 얽혀있는 모습이 마치 지브리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곳은 나가사키시 소토메지역에 남아있는 드로신부 오히라작업터입니다. 메이지 12년 소토메지역의 제일 큰 성직자로 부임해 온 프랑스인 선교자 드로신부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밭을 개간하고 밀이나 차 등을 재배했습니다. 드로신부님이 개간한 밭은 드로님 밭(ド・ロ様畑)이라고 불려, 현재에도 밭이 남아있어 소중히 관리되고 있습니다. 맡에서 수확한 작물은 Tabedooro 보스로루의 요리로 쓰여지고, 이전 구시츠구조원(旧出津救助院)에서는 부정기로, 드로님 밭에서 수확체험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메이지34년경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드로 벽이라는 드로신부님이 고안한 공법으로 쌓인 돌벽과 전면에는 벽돌로 되어있습니다. 드로 벽으로 유명한 교회가 같이 소토메지역에 남아 현 지정 오노교회당(大野教会堂) 나가사키의 교회는 그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지어진 교회들이 있는데요. 오노교회도 이 땅의 현무암이 쌓인 드로벽으로 생겨, 지역풍토에 밀착한 교회건축으로 평가가 높은 교회입니다. 1893년 (메이지 26년),26호의 신자를 위해 드로신부가 설꼐하고 사재를 들여 신도와 함께 세운 교회. 십자가가 새겨진 기와지붕도 인상적입니다. 오노교회는 잠겨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견학이 안된다고 합니다. 【드로 신부 오히라작업터】(ド・ロ神父 大平作業場跡) 주소 : 長崎市西出津町内平 【오노 교회당】 (大野教会堂) 주소 : 長崎市下大野町2624

마츠시마 추천광광지

2013-04-11

최근에 마츠시마에 있는 일본에서 제일 작은 공원을 소개해드렸는데요. 마츠시마는 사이카이시 세토항에서 10분정도, 요금도 어른 편도 200엔으로 저렴한 편이에요. 마츠시마는 한때 석탄 산업으로 번성한 섬으로 마츠시마의 석회 채굴에 관한 역사는 1782년도부터 시작이라고 합니다. 섬에는 지금도 탄광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왠지 외국풍 건물이... 독일인 기술자에 의해 세워진 붉은 벽돌 건물. 한가로운 섬에 이런 중후한 건물이 남아있었다니 놀랍습니다!! 이 분위기가 멋져서 사진을 계속 찍었네요! 이곳은 탄광에 들어갈 엘리베이터 호이스트를 설치했던 곳입니다. 1934년에 제사갱(第四坑)이 수몰하는 대참사가 일어나 그 곳에 피해자위령탑이 세워져있습니다. 그리고 19378년에 폐광. 긴 세월을 거쳐 벽돌건물에 용나무가 얽혀있지만 뭔가 예술적인 느낌이 전해지네요. 바위랑 산등은 자연이 잘도 만들어낸것 같아요~! 조형미라고도 하지만 이것이 자연이야말로 만들어낸 것이겠죠?^^ 송도탄광사갱자취를 뒤로하고 정정원(正定院)송도사원에 왔습니다. 오무라시(大村市)에 있는 쵸안지(長安寺)의 말사(末寺)라고 합니다. 이곳 천장에 주목해주세요~ 화초 85면이 그려진 천장입니다. 쵸안지의 주지가 메이지15년에 그린것이라고 하는데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번에 마츠시마를 처음 가봤는데요. 이분들께서 안내해주셨습니다. 사이카이 가이드모임 마츠시마가이드 여러분. 마츠시마에 살고 마츠시마를 사랑하고, 마츠시마의 역사와 자연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라는 가이드님들.^^ 가이드분들 안내로 섬을 둘러보면 더 마츠시마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가이드설명은 온리 일본어이지만요.ㅠㅠ 마츠시마를 비롯해 사이카이시 일본어가이드에 대한 문의는 서해 관광 협회 관광 사업부 (전화 번호 :0959-37-5833)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마츠시마전체지도(PDF)

쓰시마해전 러시아병사상륙지(対馬沖海戦のロシア兵捕虜)

2012-08-31

++ 대마도역사관광 / 쓰시마 해전러시아병사상륙지 (対馬沖海戦のロシア兵捕虜)++ 일본해군이 발틱함대(the Baltic fleet)를 격멸한 일본해 해전을 서구등에서는 쓰시마오키(對馬沖) 해전이라고 합니다. 이 해전에 의해 대마도 근해에서 격침된 상품 모노마후와 나히모후에 있었던 러시아병들이 가미쓰시마초(上對馬町) 니시도마리(西泊)의모기해수욕장에 보트로 표착하고 대마도 주민에게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상한건 전쟁상대국인,게다가 군인을 왜 대마도 주민은 따뜻하게 대접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상륙한 군인을 물을 마실수 있는 곳과 잘수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민가의 주부는 더럽혀진 의류를 세탁까지 해줬다고 합니다. 이 것은 주민이 인류적인 행위에 라이트를 비춘 것으로 전체상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을 잘못 보는 우려가 있을수 있습니다. 일본역사에 기록된 일화를 소개를 하자면,, 호고노우라미(反故廼裏見)에 의하면 이곳에 상륙한 러시아병과 우연히 만났는데 근처 농부들은 처음 보는 서양인에 굉장히 놀랐다고 합니다. 생김새가 틀리고 키도 크고 말까지 통하지 않고 국적도 알리가 없으니 망설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손짓발짓으로 그들에게 의사소통을 하자 그들이 물을 원하는 것을 알고는 물이 있는 샘으로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나서 연락을 받은 경관이 교원들에게 의뢰해 영어로 의사소통을한 결과 적국이었던 러시아병임이 밝혀지게됩니다. 그래서 큰 소동이 일자 다케시미해군에 연락해 다음날 군함이 마중나오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병들은 민가5채에서 하루밤 체류를 했다고 하네요. 5채는 모두 2층집에서 주민들과 접촉할 수 없도록 했다고 보여집니다. 민가주부들 중에는 더럽혀진 군복을 세탁한 상냥한 사람도 있었던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러시아 장교의 허리에 수그린 군도를 둘러싸는 트러블이 발생합니다. 일본측은 무장해제로 다루자고 하지만 장교는 완고하게 거부합니다. 서로양보하지 않고 험악한 상태가 되었지만 일본측이 폭력을 휘두를 이유는 없엇습니다. 러시아의 기사도와 일본군인과의 체면을 건 의지의 기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는 러시아병들이 표착한 모기하마섬에는 천연모래사장이 있습니다. 표착한 일행은 모래사장에 텐트를 쳐 휴식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제보받아주민들이 도끼를들고오고 경관들도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러일전쟁중이었으므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싸우자는 마음의 준비가되어있었던 것이지요. 간신히 군함으로부터 퇴거해 전의를 잃고 있던 러시아병은선선히 항복을 하고 무장 해제에 따랐다고 합니다.    그 때 러시아병 한사람이 모래에 자루를 묻는 것을 그곳 주민 한사람이 알아차렸는데 사람들이 다 떠난후 그것을 파헤치게됩니다. 그런데 그때 순찰을 돌던 경관이 이주민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눈치채고책망하였는데 자루를 집어들어 내용물을 확인을 하니 금화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자루를 러시아장교에게 반환을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장교는이런 행위에 감격하고 금화의 일부를 현지 관계자에게 보냈습니다. 이 것은 러시아병이 숙박한 곳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그곳 주민과 러시아병과의 관계는 좋아졌다고 합니다.

대마도 조선통신사 (朝鮮通信使)

2012-08-29

++ 대마도역사관광 /대마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조선통신사라는 것은 조선시대 일본으로 보내진 외교사절단입니다. 한반도와 가까운 대마도야말로 외교사절단의 흔적을 잘 찾아볼수 있는 곳이지요. 조선통신사 대마역지빙례 200주년 기념벽화. 아래 사진들은 이즈하라 시내 하천 난간에 새겨진 조선통신사의 행렬도를 그린 그림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약 200년간 12차례 교류가 있었음을 기념하는 내용입니다.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交隣關係)가 성립되자 조선 국왕과 막부 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습니다.이때 조선 국왕이 막부 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 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습니다. '통신'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보빙사(報聘使),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통신관(通信官), 경차관(敬差官) 등 다양하였습니다.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라는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에 박분(朴賁)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었으나 이 사행은 도중에 정사가 병이 나서 중지되었습니다.그뒤 1429년(세종 11) 박서생(朴瑞生)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일본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귀국하였는데 이것이 실제로 시행된 최초의 통신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의 파견 목적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왜구의 칩입금지 요청이 주가 되었습니다. 그후 일본과의 전쟁상태 종결을 위한 강화와 수호체결, 포로인 쇄환, 대마번의 견제 및 일본국정 탐색, 막부장군의 습직(襲職) 축하 등 매우 다양하였습니다. 한편 일본에서 조선으로 파견된 일본국왕사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동(銅)을 가져와 생필품인 쌀, 콩, 면포(綿布) 등을 가져갔습니다.일본에서 새로운 막부 장군의 승습이 결정되면, 대마도주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를 조선에 파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중앙 관리 3명 이하로 정사, 부사, 서장관을 임명하고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하였습니다. 통신사 일행이 통과하는 객사에서는 한시문학술의 필담창화라고 하는 문화상의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학술사상기술예술 등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보출처 : 대마도지식백과

일본 최초의 소학교 유적지

2012-08-28

++ 대마도역사관광 / 일본최초의 소학교 유적지 (日本で初めての小学校)++ 번교 닛신관문 또 1864년 2월때의 지방영주 요시타쓰(義達)가 시세에 대처하기 위해서 닛신(日新)관이라고 하는 항코우(藩校)를 설립하고 입학자 200명에게 손노우죠이(尊王攘夷)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닛신(日新)관은 막부 말기 시대 쓰시마번근왕당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학교를 만든것은 쓰시마시에서1685년에 당시의 쓰시마 지방영주이었던 소 요시자네(宗 義眞)가 이즈하라에 학교를 세우고 소학교라고 이름을 짓고가신의 자제를 교육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의 발상지는 나가사키 더 자세하게 말하면대마도의 이즈하라(嚴原)가 되는 것이죠^^ 대마도에서 일본 최초의 소학교의 유적지를 볼수 있는 것도 색다른 기억이 될것 같네요..^^

미야타니 지구 / 부케야시키(武家屋敷)

2012-08-27

++ 대마도관광 / 부케야시키(武家屋敷) ++ 부케야시키는 무가가 소유한 저택입니다. 영주가 소유하는 것은 영주저택 혹은 번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현재는 하급무사의 주거인 사무라이저택도 부케야시키(武家屋敷)라고 부1竪� 한다고 합니다. 미야타니지구 안내도 입니다. 宮谷(미야타니), 風神の森 (후진노모리), 風松(카자마츠), 谷出橋(탄텐바시)등등 역사적으로 연결된 곳입니다. 목조로 만든 가옥이 많았던 일본에서 화재 시에 불길을 막기 위해 도로 쌓은 석벽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무가저택을 끼고 만들어 있는데 그 석벽덕분에 옛가옥들이 온전히 보존되어있는걸 볼수 있습니다. 엔쇼자에(煙硝ざえ)의 유래 막부 말기에 쓰시마영주가 이 안쪽에서 화약제조를 하고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시대까지 구군의 탄약고가 있어서 이 이름이붙여졌다고 합니다. 역 100미터 전번의아타고야마(愛宕山) 산등성이에는 아직도 폭약고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부케야시키 (武家屋敷) 주소 : 長崎県対馬市厳原地区 나가사키켄 쓰시마시 이즈하라지구 전화번호 : 0920-53-6111 자유견학

이즈하라 스토우케 주택지 (主藤家住宅)

2012-08-22

++ 대마도관광 /이즈하라 스토우케 주택지 (主藤家住宅) ++ 건축연대에 관한 자료는 없지만, 19세기 중간쯤에 건축되어졌다고추정되고 있고 나라지정 중요문화재입니다. 대마도의 가문의 품격이 높은 농가의 3방의 배치건축양식입니다. 평면은 「본좌」 「부엌」 「난도(納戶)」로부터 이루어지는 소위 3방의 배치로 본좌 앞을 응접실(座敷) 부엌에 접하는 부분을 호구(戸口)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토방은 좁고, 아궁이,목욕탕등이 있습니다. 직사각형단면의 기둥을큰것이 이 지방의 특징입니다.대마도 지방의 대표적인 농가의 예로 귀중한 유구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말그대로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인지라 외관상 견학만 가능합니다. 이즈하라 스토우케 주택지 (主藤家住宅) 주소 : 長崎県対馬市厳原町豆酘2752 나가사키켄 쓰시마시 이즈하라쵸 쓰쓰 2752 전화번호 : 0920-54-2341(대마시교육위원회 문화재과) 자유견학(외관만)

카네이시죠 정원 / 구 금석성정원 (旧金石城庭園)

2012-08-22

++ 대마도역사관광 /카네이시성 정원 /구 금석성 정원(主藤家住宅) ++ 대마도 이즈하라에 위치한 카네다죠아토(금석성적)은 대마도영주 종가(宗家)의 집정거점으로서 17세기 후반에 정비된 성관의 유적입니다. 금석성터의 정원은 성터 부지의 서남구석부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이렇게 직원들이 자리를 비웠을 경우는 벨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 입장료는 300엔입니다. 친절하게 한글로도 안내가 되어있으니 걱정하지마세요~ ^^ 구금석성정원으로 가는 안내입니다. 사적 내 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는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발굴된 정원유구는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해서 쓰시마지방 영주종가묘지와 배후의 산맥을 차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정말 아름다운 정원이에요~ 지금 한창 파랗게 물들 시기라 더욱더 예쁜것 같아요.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것 같습니다.^^ 카네이시죠 정원 / 구 금석성정원(旧金石城庭園) 주소 : 長崎県対馬市厳原町今屋敷670-1 나가사키켄 쓰시마시 이즈하라쵸 이마야시키 670-1 전화번호 : 0920-52-5454 이즈하라항에서 차로 5분거리 입장료 : 300엔 (09:00~17:00) 주차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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